지지 한 글자가 사실은 여러 겹이다

지장간(支藏干)은 말 그대로 '지지가 감추고 있는 천간'입니다. 사주판에 적히는 지지는 한 글자이지만, 그 안에는 한 개에서 세 개의 천간 기운이 층을 이루어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인원용사(人元用事)라고도 부릅니다.

왜 이런 구조가 필요했을까요. 천간은 하나의 순수한 기운을 나타내지만, 지지는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의 한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寅)월은 입춘부터 경칩까지 약 30일 동안 이어지는데, 그 30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기운일 수는 없습니다. 앞부분에는 지난 겨울의 잔기가 남아 있고, 중간에 새 기운이 싹트며, 뒷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달의 본래 기운이 자리를 잡습니다.

지장간은 이 시간의 층위를 천간으로 나눠 적어 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간은 단순한 부속 정보가 아니라, 지지를 정밀하게 읽기 위한 필수 도구로 다뤄집니다.

여기 · 중기 · 본기 — 세 겹의 이름

지장간을 이루는 층은 순서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적을 때는 앞에서 뒤로 나열하며, 맨 뒤에 오는 글자가 그 지지를 대표합니다.

다른 이름무엇인가힘의 크기
여기(餘氣)초기(初氣)앞 달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구간가장 약하다
중기(中氣)-새로 싹트거나 갈무리된 기운중간
본기(本氣)정기(正氣)그 지지를 대표하는 본래 기운가장 강하다
지장간을 나열할 때 맨 마지막에 오는 글자가 본기입니다. 지지의 오행을 물으면 답은 언제나 이 본기의 오행입니다.

각 층이 한 달 중 며칠씩을 차지하는지도 전통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를 월률분야(月律分野)라 하며, 지지가 어떤 성격의 자리인지에 따라 배분이 달라집니다.

지지 유형해당 지지여기중기본기
생지(生支)인 · 신 · 사 · 해7일7일16일
왕지(旺支)자 · 묘 · 유10일없음20일
고지(庫支)진 · 술 · 축 · 미9일3일18일
왕지 가운데 오(午)만 예외적으로 중기 기(己)를 두어 세 겹이 됩니다. 일수 배분은 문헌과 유파에 따라 하루 이틀씩 차이가 있으므로 절대적인 값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지지 12개의 지장간 전체

아래가 열두 지지의 지장간 전체입니다. 왼쪽부터 여기·중기·본기 순서이며, 중기가 없는 지지는 두 글자만 갖습니다.

지지여기중기본기본기의 오행
자(子)임(壬)-계(癸)수(水)
축(丑)계(癸)신(辛)기(己)토(土)
인(寅)무(戊)병(丙)갑(甲)목(木)
묘(卯)갑(甲)-을(乙)목(木)
진(辰)을(乙)계(癸)무(戊)토(土)
사(巳)무(戊)경(庚)병(丙)화(火)
오(午)병(丙)기(己)정(丁)화(火)
미(未)정(丁)을(乙)기(己)토(土)
신(申)무(戊)임(壬)경(庚)금(金)
유(酉)경(庚)-신(辛)금(金)
술(戌)신(辛)정(丁)무(戊)토(土)
해(亥)무(戊)갑(甲)임(壬)수(水)
본기의 오행이 곧 그 지지의 오행입니다. 지지 12가지 표에서 본 오행 배속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왜 그 천간이 그 지지에 들어 있는가

여기 — 앞 달의 본기가 그대로 넘어온다

여기는 규칙이 가장 단순합니다. 바로 앞 지지의 본기가 그대로 여기로 들어옵니다. 자(子)의 앞은 해(亥)이고 해의 본기가 임(壬)이므로 자의 여기는 임입니다. 진(辰)의 앞은 묘(卯)이고 묘의 본기가 을(乙)이므로 진의 여기는 을입니다. 계절이 칼로 자르듯 끊기지 않고 겹쳐 넘어간다는 감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생지인 인·신·사·해의 여기가 모두 무(戊)인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 넷의 앞에는 각각 축·미·진·술이 놓이는데 모두 토(土)에 속하는 지지이며, 지장간에서는 이 남은 토 기운을 무(戊)로 통일해 적습니다.

중기 — 삼합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기는 삼합(三合) 이론을 알면 정확히 설명됩니다. 삼합은 생지·왕지·고지 세 글자가 모여 하나의 오행을 만드는 관계인데, 생지에는 그 오행이 처음 싹트는 기운이, 고지에는 그 오행이 갈무리된 기운이 중기로 들어 있습니다.

삼합만드는 오행생지의 중기고지의 중기
인오술(寅午戌)화(火)인(寅)의 중기 = 병(丙)술(戌)의 중기 = 정(丁)
신자진(申子辰)수(水)신(申)의 중기 = 임(壬)진(辰)의 중기 = 계(癸)
해묘미(亥卯未)목(木)해(亥)의 중기 = 갑(甲)미(未)의 중기 = 을(乙)
사유축(巳酉丑)금(金)사(巳)의 중기 = 경(庚)축(丑)의 중기 = 신(辛)
생지에는 양간이, 고지에는 음간이 들어갑니다. 시작하는 기운은 양이고 갈무리된 기운은 음이라는 음양 감각과 맞물립니다.

이 표 하나로 여덟 개 지지의 중기가 모두 해결됩니다. 남는 것은 오(午)의 중기 기(己) 하나인데,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화가 토를 낳는(화생토) 구간을 반영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자·묘·유에 중기가 없는 이유는 그 자리가 각 오행의 순수한 절정이라 다른 기운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장간이 해석을 바꾸는 두 지점

통근(通根) — 천간이 뿌리를 내리는가

통근은 천간의 오행이 지지의 지장간 속에 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뿌리가 있는 천간은 힘이 실려 실제로 작동하고, 뿌리가 없는 천간은 이름만 걸려 있을 뿐 힘을 쓰지 못한다고 봅니다. 지장간을 보지 않으면 이 판단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갑(甲)목 일간이 인(寅)을 깔고 있다면, 인의 본기가 갑목이므로 아주 튼튼하게 뿌리내린 상태입니다. 같은 갑목 일간이 해(亥)를 깔고 있다면 해의 중기가 갑목이므로 뿌리가 있기는 하지만 본기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유(酉)를 깔고 있다면 유의 지장간은 경·신으로 모두 금이라 목의 뿌리가 없습니다.

뿌리의 위치해석
본기에 있다가장 강하다그 천간이 확실히 힘을 갖는다
중기에 있다중간쓸 수 있지만 조건이 붙는다
여기에만 있다약하다있다고 보기는 하되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지장간에 없다없다뿌리 없는 천간, 이른바 허투(虛透)로 본다

투출(透出) — 숨은 기운이 밖으로 나왔는가

투출은 통근의 반대 방향입니다. 지장간에 들어 있는 천간이 사주 천간 자리에도 같이 나와 있으면 '투출했다'고 합니다. 안과 밖이 호응하는 상태이므로 그 기운이 실제 삶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읽습니다. 특히 월지의 지장간이 천간에 투출했는지는 중급에서 다루는 격국(格局)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십성 판단 — 지지의 십성은 본기로 정한다

지지에 붙는 십성은 지지 자체가 아니라 그 지지의 본기 천간을 일간과 대조해 정합니다. 예를 들어 일간이 을(乙)목인 사람의 사주에 해(亥)가 있다면, 해의 본기는 임(壬)수이고 수는 목을 생하므로 인성이 됩니다. 음양이 다르므로(을은 음, 임은 양) 정인이 됩니다.

다만 지장간을 본다고 해서 없던 기운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지장간은 어디까지나 잠재된 기운이며, 겉으로 드러난 글자보다 작용이 약합니다. 지장간을 근거로 사주 전체의 판단을 뒤집는 해석은 신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