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는 어떤 절기인가

입하는 설 립(立)에 여름 하(夏)를 씁니다. 입춘·입추·입동과 함께 계절을 세우는 네 개의 절기, 이른바 사립(四立) 중 하나입니다. 태양 황경이 45도에 이르렀을 때이고 양력으로는 5월 6일 무렵입니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에서 15도를 더 나아간 자리이며, 여기서부터 여름의 여섯 절기가 시작됩니다.

5월 초를 여름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 무렵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시기이고 체감상으로는 봄의 절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절기의 계절 구획은 기온이 아니라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입춘이 황경 315도, 입하가 45도, 입추가 135도, 입동이 225도로 정확히 90도씩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이 구획이 얼마나 기하학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즉 입하는 여름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여름 구간에 들어섰음을 표시하는 눈금입니다.

사주에서 입하가 갖는 뜻

입하는 절(節)이고 사(巳)월을 엽니다. 입하 절입 시각을 지나야 월지가 진(辰)에서 사(巳)로 넘어갑니다. 5월 1일부터 5일 사이에 태어났다면 아직 진월인 경우가 많고, 해마다 경계가 하루 안팎 흔들리므로 이 구간 출생자는 그해의 절입 시각을 확인해야 합니다. 달력의 5월과 사주의 사월은 시작점이 다르며, 이 차이를 무시하면 월주가 통째로 어긋납니다.

입하가 여는 사월은 화(火) 기운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사의 지장간은 무(戊)·경(庚)·병(丙)이고 본기는 태양에 비유되는 병화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가운데 든 경금(庚)입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달인데 금이 들어 있는 셈인데, 이는 사·유·축 삼합이 금국을 이루는 출발점이 사라는 사실과 이어집니다. 앞선 진월이 목에서 화로 넘어가는 완충이었다면, 사월은 화가 자기 자리를 잡으면서 동시에 다음 계절의 씨앗을 품는 구조입니다.

사는 인·신·해와 함께 생지(生支)이기도 합니다. 각 계절이 시작되는 네 자리로, 기운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뻗어 나가는 방향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역마의 조건 글자가 이 넷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리하면 사월은 계절이 열리는 자리이자 화 기운의 출발점이며 안에 금을 품은 복합적인 구간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여덟 글자를 계산하고 배치하는 이야기이지, 이 달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산다는 예고가 아닙니다.

사립(四立)황경여는 월지
입춘315도인(寅)
입하45도사(巳)
입추135도신(申)
입동225도해(亥)
계절을 여는 네 절기는 정확히 90도씩 떨어져 있습니다. 넷 모두 절이라 월지를 바꾸지만, 연주까지 바꾸는 것은 입춘뿐입니다.

옛사람들은 입하를 어떻게 보냈나

입하 무렵의 먹거리로 전해지는 것이 쑥을 넣은 떡입니다. 쑥이 아직 연할 때 뜯어 쌀가루와 버무려 쪄 먹는 쑥버무리 종류인데, 봄나물이 끝나 가는 시점에 마지막으로 챙기는 음식이었습니다. 차를 만드는 지역에서는 입하 무렵의 찻잎을 따로 구분했습니다. 곡우 전에 딴 우전보다 잎이 자라 억세지만 그만큼 맛이 진해지는 시기이지요.

농사로는 모내기 준비가 본격화되는 때입니다. 못자리의 모가 자라고, 논에 물을 대고, 밭작물의 김을 매는 일이 겹칩니다. 이 무렵부터 벌레가 늘어나 병충해를 살피는 일도 시작됩니다. 옛 기록에는 입하 무렵 개구리 울음과 지렁이가 나오는 것을 계절의 표지로 삼는 서술이 보입니다. 절기마다 자연의 어떤 장면이 나타나는지를 적어 두고 그것으로 시기를 가늠했던 방식입니다.

오늘 입하를 읽는 법

입하와 체감의 어긋남은 24절기 중에서도 큰 편입니다. 5월 초에 여름이라 부르기에는 이르지만, 최근 몇 년간 5월 중순에 이미 30도를 넘는 날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이름이 마냥 성급한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흐름 속에서 입하가 가리키던 시점이 실제 여름의 시작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관찰도 가능합니다. 절기는 태양의 기하학이라 변하지 않는데 기후가 그쪽으로 옮겨 온 셈이지요. 어느 쪽이든 5월 초를 여름의 입구로 놓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은 지금도 나쁘지 않은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