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주를 처음 배우면 오행의 개수를 세게 됩니다. 목이 둘, 화가 하나,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어가면 개수가 힘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천간에 목이 두 개 있어도 지지 어디에도 목의 기운이 없다면, 그 목은 땅에 심기지 않은 나무와 같아 실제로 쓸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명리학은 천간을 드러난 기운, 지지를 실제 바탕으로 봅니다. 천간은 마음·의지·명분처럼 밖으로 보이는 층이고, 지지는 환경·현실·체력처럼 그것을 떠받치는 층입니다. 그래서 어떤 천간이 힘을 쓰는지 판단하려면 그 글자가 지지에 발을 딛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근(通根)입니다.

반대 방향의 질문도 있습니다. 지지 속에 숨어 있는 기운이 밖으로 드러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장간에만 머문 기운은 잠재된 상태이고, 그것이 천간에 같은 글자로 나타나면 실제로 작동할 여건이 갖춰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투간(透干), 또는 투출(透出)입니다.

통근(通根) — 천간이 뿌리를 내린다

통근은 천간의 글자가 지지의 지장간 속에 같은 오행의 글자를 두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뿌리가 통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천간의 갑목(甲木)은 인(寅)의 지장간 본기가 갑이므로 인에 통근하고, 묘(卯)의 지장간에도 갑·을이 들어 있으므로 묘에도 통근합니다.

주의할 점은 통근이 같은 오행에 한정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생해주는 오행이 지지에 있는 것은 도움을 받는 것이지 뿌리를 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갑목에게 해수(亥水)는 수생목으로 도와주는 자리이지만, 해의 지장간에 갑목이 들어 있기 때문에 통근이 성립하는 것이지 수라서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을 섞으면 강약 계산이 흐트러집니다.

뿌리에도 굵기가 있다

모든 뿌리가 같은 힘을 갖지는 않습니다. 지장간에서 그 글자가 본기(本氣)로 자리 잡았는지, 중기(中氣)나 여기(餘氣)에 잠깐 걸쳐 있는지에 따라 굵기가 달라집니다. 계절의 중심에 놓인 글자에 뿌리를 두면 굵은 뿌리이고, 환절기 토(土)에 남은 잔여 기운에 걸쳐 있으면 가는 뿌리입니다.

오행굵은 뿌리 (록·왕지)중간 뿌리 (중기)가는 뿌리 (고지·여기)
목(갑·을)인(寅) · 묘(卯)해(亥) — 중기 갑미(未) — 중기 을 / 진(辰) — 여기 을
화(병·정)사(巳) · 오(午)인(寅) — 중기 병술(戌) — 중기 정 / 미(未) — 여기 정
금(경·신)신(申) · 유(酉)사(巳) — 중기 경축(丑) — 중기 신 / 술(戌) — 여기 신
수(임·계)해(亥) · 자(子)신(申) — 중기 임진(辰) — 중기 계 / 축(丑) — 여기 계
토(무·기)진 · 술 · 축 · 미오(午) — 중기 기인 · 사 · 신 · 해 — 여기 무
지장간 구성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고지(墓庫)의 뿌리를 얼마나 인정할지는 유파에 따라 견해가 갈립니다.

어느 자리에 뿌리를 두는가

같은 글자에 뿌리를 두더라도 그 지지가 네 기둥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힘이 달라집니다. 월지에 둔 뿌리와 년지에 둔 뿌리는 무게가 다릅니다.

자리왜 그런가해석의 초점
월지(月支)가장 큼계절 그 자체이며 사주 전체의 배경이 되는 자리타고난 기반과 사회적 토대
일지(日支)일간이 직접 깔고 앉은 자리라 밀착도가 높음본인의 체감과 가장 가까운 영역
시지(時支)중간일주에 붙어 있으나 계절의 힘을 직접 받지는 않음말년과 결과의 영역
년지(年支)작음일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작용이 약함출신 배경과 초년의 조건
월지 > 일지 > 시지 · 년지 순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지와 년지의 우열은 유파에 따라 다르게 봅니다.

천간의 위치도 함께 봅니다. 천간의 글자는 바로 아래에 있는 지지에 뿌리를 둘 때 가장 확실하게 힘을 받습니다. 이를 앉은 자리에 뿌리를 두었다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시간(時干)의 글자가 년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리가 멀어 힘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뿌리의 개수도 변수입니다. 뿌리가 하나뿐이면 그 지지가 충(沖)을 맞거나 합(合)으로 묶일 때 천간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반대로 여러 자리에 뿌리를 나눠 두었다면 하나가 깨져도 나머지가 버팁니다. 사주를 볼 때 뿌리가 하나인지 여럿인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투간(透干) — 숨은 기운이 드러난다

투간은 통근의 반대 방향입니다. 지지의 지장간에 들어 있던 글자가 천간에도 같은 글자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월지가 인(寅)이고 천간에 병(丙)이 있다면, 인의 지장간 중기인 병화가 천간으로 올라온 것이므로 병화가 투간했다고 합니다.

왜 이것을 중요하게 볼까요. 명리학은 지장간을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잠재된 기운으로 봅니다. 마음속에만 있는 생각과 같습니다. 그것이 천간으로 나오면 밖으로 표현되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투간한 기운은 사주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기운으로, 투간하지 못한 기운은 잠재된 성향으로 구분해 읽습니다.

투간과 통근은 한 쌍이다

두 개념은 사실 같은 관계를 위아래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천간에서 지지를 내려다보면 통근이고, 지지에서 천간을 올려다보면 투간입니다. 그래서 투간한 글자는 그 지지에 자동으로 통근하게 됩니다. 이렇게 위아래가 서로를 받치고 있는 구조를 명리학은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봅니다.

유근·무근·암장 — 네 가지 상태로 정리하기

천간에 드러났는가와 지지에 뿌리가 있는가, 이 두 축을 교차하면 어떤 기운의 상태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주를 볼 때 각 오행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표시해 보면 강약 판단이 한결 선명해집니다.

상태천간지지 뿌리어떻게 읽는가
유근(有根)있음있음실제로 힘을 쓰는 기운. 강약 계산에 온전히 반영
무근(無根)있음없음명분은 있으나 지속력이 약함. 겉으로 드러나되 쉽게 흔들림
암장(暗藏)없음있음잠재된 성향. 운에서 같은 천간이 오면 그때 드러남
결(缺)없음없음해당 오행이 사실상 비어 있음. 그 영역의 결핍으로 읽음

무근인 천간을 두고 고전은 뜬 나무(浮木)나 헛되이 드러났다(虛透)는 표현을 씁니다. 목소리는 크지만 실행이 따르지 않는 상태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다만 무근이 곧 나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 기운이 사주에 부담이 되는 글자라면 뿌리가 없는 편이 오히려 다행일 수 있습니다.

암장 역시 마찬가지로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숨어 있던 기운은 대운이나 세운에서 같은 천간이 들어올 때 비로소 표면화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원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성향이 특정 시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