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春分)은 어떤 절기인가
춘분은 봄 춘(春)에 나눌 분(分)을 씁니다. 두 가지가 나뉘는데, 하나는 봄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입니다. 입춘에서 입하까지 이어지는 봄의 한복판을 지난다는 뜻이자,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천문학적으로 춘분은 태양이 천구의 적도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로지르는 순간이고, 이때 태양의 황경이 0도입니다. 양력으로는 3월 21일 무렵이며 해마다 하루 안팎 흔들립니다.
황경 0도라는 값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24절기 전체가 태양 황경 15도 간격으로 정의되는데, 그 좌표계의 원점이 바로 춘분점이기 때문입니다. 입춘이 315도인 것도, 하지가 90도인 것도 모두 춘분을 0으로 놓았기 때문에 나오는 값입니다. 봄이 시작되는 절기는 입춘이지만 각도를 세는 출발점은 춘분인 셈이지요. 절기를 태양 황경으로 정하는 이 방식을 정기법(定氣法)이라 하고,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 시헌력을 받아들이면서 이 방식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주에서 춘분이 갖는 뜻
춘분은 중기(中氣)입니다. 그러므로 월을 열지 않습니다. 이름에 나눌 분이 들어 있고 낮과 밤이 갈리는 날이다 보니 무언가 바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주의 월지는 춘분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묘(卯)월은 경칩에 열려 다음 절인 청명 직전까지 이어지고, 춘분은 그 한가운데를 표시할 뿐입니다. 3월 하순 출생자의 월지는 춘분과 무관하게 묘이며, 확인해야 할 것은 앞뒤의 경칩과 청명입니다.
중기에는 중기의 일이 있습니다. 태음태양력에서 한 달 안에 중기가 하나도 들지 않으면 그 달을 윤달로 삼습니다. 달의 삭망 주기는 약 29.5일이고 중기 사이의 간격은 약 30.4일이라 조금씩 어긋나는데, 그 어긋남이 쌓이면 중기가 통째로 빠지는 달이 생기고 그 달이 윤달이 됩니다. 즉 중기는 음력과 태양의 위치를 다시 맞추는 조정 장치입니다. 사주에서 윤달을 별도로 다루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명리는 애초에 음력 달이 아니라 절기로 월을 나누므로, 윤달이 있든 없든 월주 계산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춘분이 놓인 묘월은 목 기운의 절정입니다. 묘의 지장간은 갑(甲)과 을(乙)뿐이고 본기는 부드러운 을목입니다. 봄기운이 가장 순수하게 응집된 자리이지요. 계절의 관점에서 보면 춘분은 그 응집이 정점을 지나 다음 계절로 기우는 변곡점이기도 합니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 여기이므로, 여기서부터는 목의 성장이 화(火)의 확산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구간으로 읽습니다. 다음 절인 청명이 진(辰)월을 열며 그 전환을 실제로 집행합니다.
옛사람들은 춘분을 어떻게 보냈나
춘분 무렵은 농사의 실제 착수 시점이었습니다. 논밭을 갈고 봄보리를 파종하고 씨앗을 고르는 일이 이때 몰립니다. 겨우내 미뤄 둔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기라 마을 전체가 바빠졌습니다. 절기 자체를 기념하는 큰 행사보다는 노동의 시작으로 기억되는 절기에 가깝습니다.
이 무렵의 바람에 관한 말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음력 2월 바람이 사납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검은 소의 뿔이 오그라들 정도라는 과장된 표현까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는 대륙과 해양의 기온 차가 커서 바람이 강하고 변덕스럽습니다. 농사를 막 시작한 참에 강풍이 불면 피해가 크니 경계할 만한 일이었지요. 참고로 나이떡을 나눠 먹는 머슴날은 음력 2월 초하루로, 절기가 아니라 음력 날짜로 정해지는 명절이므로 춘분과 겹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 춘분을 읽는 법
춘분은 24절기 중에서 현대 천문학과 가장 매끄럽게 이어지는 절기입니다. 춘분점은 지금도 천문학에서 좌표의 기준으로 쓰이고, 낮과 밤의 길이가 뒤집히는 날이라는 사실은 기후가 어떻게 변하든 달라지지 않습니다. 기온은 해마다 다르지만 태양의 기하학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이 언제 오느냐를 두고 체감이 제각각인 시대에도, 춘분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눈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해가 밤보다 길어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 해의 방향을 확인하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