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는 어떤 절기인가
입추(立秋)의 입(立)은 세운다는 뜻이고 추(秋)는 가을입니다. 글자 그대로 가을을 세운다는 말로, 입춘·입하·입동과 함께 네 계절의 문을 여는 사립(四立)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양 황경이 135도에 이르는 때이며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에 듭니다. 스물넷 가운데 열세 번째, 가을 여섯 절기의 첫머리입니다. 절기는 달력 날짜가 아니라 태양의 위치로 정해지므로 해마다 하루 안팎으로 흔들리고, 특정 연도의 정확한 절입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이 해마다 펴내는 월력요항이 정본입니다.
이름과 달리 입추 무렵의 한국은 한 해에서 가장 더운 시기입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 지방의 기후를 바탕으로 정리된 체계라는 점, 그리고 절기가 기온이 아니라 태양의 위치를 열다섯 도씩 나눈 눈금이라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삼복 가운데 마지막인 말복은 입추가 지난 뒤 첫 번째 경일(庚日)에 오도록 정해져 있어, 입추와 무더위는 처음부터 한 묶음이었습니다. 입추가 알리는 것은 지금 시원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해가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주에서 입추가 갖는 뜻
입추는 절(節)입니다. 스물네 절기는 절과 중기(中氣)가 번갈아 오는 구조인데, 명리에서 월주(月柱)의 지지를 바꾸는 것은 오직 열두 개의 절뿐입니다. 입추는 신(申)월을 엽니다. 다시 말해 입추 절입 시각을 지나야 비로소 월지가 미(未)에서 신(申)으로 넘어갑니다. 달력으로 8월생이라도 입추 이전에 태어났다면 월지는 여전히 미월이고, 8월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월로 적으면 여덟 글자 가운데 두 글자가 통째로 어긋납니다.
신월은 금(金) 기운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신(申)의 지장간은 무(戊)·임(壬)·경(庚)으로, 여기(餘氣)의 무토는 미월에서 넘어온 여름의 흙이고 본기는 경금입니다. 중기에 임수가 들어 있어 신금을 안에 물을 품은 차가운 금으로 읽고, 신자진 삼합이 수국(水局)을 이루는 출발점이 신인 근거도 여기 있습니다. 다만 입추 직후의 신월 초입은 아직 미월의 열기가 남은 구간이라, 금이 제 힘을 쓰는지 화(火)에 눌려 있는지를 사주 전체에서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입추를 어떻게 보냈나
입추는 농사에서 한숨 돌리는 자리였습니다. 김매기가 대체로 끝나 논밭에 큰 일손이 들지 않는 시기여서, 이 무렵의 한가함을 두고 어정 칠월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대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손길이 시작됩니다. 김장에 쓸 무와 배추 씨를 뿌리는 때가 대개 입추 앞뒤였고, 늦여름 볕에 곡식이 여무는 정도를 살피며 추수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비였습니다. 벼가 한창 여물어야 할 때 장마가 길어지면 한 해 농사가 통째로 어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추 무렵 비가 여러 날 계속되면 조정과 각 고을에서 비 그치기를 비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볕을 청하는 제사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절기의 무게를 보여 줍니다.
- 말복 — 입추가 지난 뒤 처음 오는 경일(庚日)이 말복입니다. 삼복의 마지막이 입추 뒤에 놓이도록 짜여 있습니다.
- 김장 채소 파종 — 무와 배추 씨를 뿌려 늦가을 수확을 준비했습니다.
- 기청제 — 장마가 길어지면 볕을 청하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 날씨 보기 — 입추에 하늘이 맑으면 그해 곡식이 잘 여문다고 여겼습니다.
오늘 입추를 읽는 법
입추에 폭염특보가 내리는 일은 이제 예사입니다. 기후가 달라진 탓도 있고, 애초에 절기가 기온 예보가 아니라 태양 위치의 눈금인 탓도 있습니다. 그러니 입추를 오늘부터 시원해진다는 뜻으로 읽으면 해마다 실망하게 됩니다. 대신 이렇게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해가 지는 시각은 하지 이후 꾸준히 빨라져 이 무렵이면 눈에 띄게 짧아지고, 밤공기의 결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더위의 정점은 아직 남았지만 빛의 양은 이미 줄고 있습니다.